요약
숭례문, 그리고 이야기들.



- 화재가 나기 한 달전 경비업체가 바뀜. 월 30만원의 비용으로 에스원에서 숭례문의 경비를 담당했으나 경비 절감을 이유로 KT 텔레캅으로 바뀌고 기존 적외선 감지기가 9개에서 6개로 줄어들고 순찰 횟수도 하루 10회에서 1회로 줄어들었다.
- 당시 숭례문을 관리하고 있던 업체의 직원은 퇴근하고 CCTV만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며, 초기 화재를 발견하지 못하고 시민의 신고가 들어오고서야 사태가 파악
- 밤 20:47 KT 텔레캅이 남대문에 설치한 센서에 뭔가 반응. 경찰서및 소방서에 연락 안함
- 밤 20:57 텔레캅 직원 도착. 현장에서는 이미 진화작업중.
- 밤 01:55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반만 남긴 채 모두 붕괴. 5시간 만에 거의 전소.
- 숭례문 방화에 쓰인 물품은 겨우 니스 3통과 라이터 하나.
- 화재진압이 어려웠던 이유. 선조들이 너무 잘 지어서 소방차 32대가 물을 퍼부었으나 지붕이 완전 방수라 지붕 내부의 불은 끄지 못함.
- 전문가들은 기와를 걷어내든가 서까래에 구멍을 뚫는다든가 해서 불이 붙은 부분에 직접 물이 닿게 했어야 한다고 하지만,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물론 경찰, 서울시, 현장 생중계를 하던 방송사 등 아무도 이를 몰랐다.
- 문화재청의 전문가들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. 그리고 소방관들이 내부에서 천장에 구멍을 뚫고 물을 뿌릴려고 했으나 붕괴위험이 있어 포기.
- 양녕대군이 썼다고 알려진 현판은 떼낼 시간이 없어서 연결 부분을 톱으로 절단하여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약간 파손되긴 했지만 지켜냈다.
- 숭례문을 공개한 사람은 이명박 서울 시장. 화재 후 국민성금을 걷어 복원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빈축을 삼. 이후 국민성금 모금에 대해 오해다라고 말해 가카의 전매특허 오해다의 시작을 알렸다.
- 중앙일보 미주판에 한 기독교인이 "NO 숭례문복원 NO 우상망국"이란 칼럼이 실렸는데 그 내용은 '우상숭배의 상징인 숭례문 복원을 막아야 한다'는 주장이었다.
- 뉴스 방송사 YTN은 사옥이 숭례문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어서 어느 언론보다 빨리 사건을 보도할 수 있었다. 그러나 화재 이우 숭례문이 보이는 배경을 화면에 비추기 애매하게 되어버렸다.
- 방화범은 70대 채종기씨. 택지개발에 따른 자신의 토지에 대한 보상이 시가보다 약 2억 낮게 책정되었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일을 저질렀다고.
- 현장검증 자리에서 "그래도 인명피해는 없었잖아.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."는 발언을 하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.
- 채종기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데 교도소에서도 숭례문 방화범이라는 것이 알려져 다른 죄수들에게도 싸늘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.
- 숭례문 복원에는 목재가 많이 드는데 그 중 큰 기둥이나 추녀에 사용되는 특대재의 수급이 불투명하였으나 개인 기증자들이 많아 부족하지는 않다고 한다. 개 중에는 몇 백년된 선산의 소나무를 기증하기도.